매우 감성적인 회고임을 주의
PM == Product Manager
취업 전 …
세번째 인턴 경험에서 진한 현타를 느끼고 그냥 이 직무 포기하고 돈 많이 주는 곳으로 갈까?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러기엔 나는 여전히 이 일을 너무 좋아했다. 그래서 지금 돌이켜보면 머리로는 직무가 맞지 않아도 대기업에 넣어야 해! 라는 생각으로 무언가 넣긴 했는데... 결론적으로는 아무것도 안 하고 (게임만 하면서 -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 L1 라이센스 보유 -) 허송세월을 보냈었다. 결국 실제로 서류를 넣은 건 IT기업이나 서비스기획/PM 포지션이었다. 난 이 일이 너무 하고 싶었나보다.
첫번째 회사
정작 취업을 한 곳은 내가 IT기업이라고 생각했던, 해당 파이프라인에서는 시장 1위인 나름 큰 중견기업이었는데 직무가 문제였다. 사업전략지원 업무였는데, 나는 ‘사업전략’에 가깝다면 산업의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것이니까 이 쪽으로 경력을 쌓으면 나중에 어떻게든 PM으로 넘어오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실제 업무는 ‘지원’에 방점이 찍혀있었다.
그리고 뭐 ‘전략’ 스러운 점은 있어서 열심히 리서치하고 리포트를 써야 했는데, 이 때 느낀 점은… 난 참 혼자 일하는 업무와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루종일 아무와도 말을 섞을 일이 없을 때도 있었다. 너무 재미가 없었다. 난 협업이 좋았다. 싸우더라도 사람들 얼굴보고 떠드는게 맞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내 업무 결과물에 대해서 단 한 번도 ‘배우고 있다’, ‘성장하고 있다’라고 느껴지는 피드백을 듣지 못했다.
여기서는 ‘열심히 일하는 게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료했다. (큰 회사였기 때문에 팀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속한 팀은 그러했다) 자발적으로 맡아서 열심히 한 일은 데이터 업무였는데, 사실 안 해도 되는 업무였지만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물경력이 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래도 이 와중에 대시보드 구현을 도와주고, 막히는 부분을 정말 친절하게 알려주셨던 분이 있었는데 그 회사의 환경에서 쉽지 않은 여러가지 일을 해내신 분이었다. 그 분의 존재가 유일하게 힘이 되었던 것 같다.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이 같은 조직에 존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동기부여를 하는 힘이 있다.
하지만 (신입 주제에 매우 오만할 수 있지만) 우리 팀에서는 업무적으로 배우고 싶은 사람이 없었다. 혹은 나는 이 업무에 정말 조금의 흥미도 느끼지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팀원들에게 존경할 점을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내 이런 생각이 태도에 드러났는지 팀장은 나를 동기부여하는 대신 내게 폭언을 했다. (이를테면 잘못 뽑은 것 같다든지... 아무래도 본인의 안목에 대한 폭언이긴 한 것 같음) 하지만 업무 상으로는 그 어떠한 피드백도 주지 않으면서 '결과물에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같이 일하기 싫다'라는 말을 면전에 하는 사람과는 일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직을 결심했고, 이번 이직의 목표는 무조건 제품 사이드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이곳은 짧은 기간 머물렀기 때문에 이력서에 기재하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스트레스 받게 한 점은 원징영수증을 7번쯤 요구한 끝에야 받을 수 있었고, 경력증명서는 여전히 받지 못했다...)
이 회사에 감사하는 점은 :
- 환승이직을 했기 때문에 금전난 없이 이직을 준비할 수 있었다는 점
- 오퍼 협상에 있어서 최저선을 올려주었다는 점 (IT회사에서 비개발 신입은 진짜 밑도 끝도 없이 후려치기를 당한다)
- 일단 재직 중인 회사가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협상/구직에서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점
- 짧은 시간 안에 내가 어떤 일에 잘 맞지 않는지에 대해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는 점 (효율적이다!)
이 회사에서 배운 점은 :
- 사람은 버티게 하는 힘이 되어주기도 하고, 떠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 나도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동기부여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자.
- 나에게 성장이란 키워드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 나는 제품 가까이에서 일할 때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다.
- WHY? 내가 직접 제품을 바꿀 때, 어떻게 바꿀지 고민할 때, 그 결과를 확인할 때, 이런 trial and error를 통해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게 재미있다.
두번째 회사
그래도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는, 첫번째 회사에서 리서치 업무를 하는 도중 알게되었던 회사에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역시 과거에 한 일은 어떻게든 도움이 된다. 이번엔 드디어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게 되었다.
참 우여곡절이 많았다. 처음에는 팀장도 없고, 사수는 영원히 없었다. (그나마 나중에는 팀장님이 생겨서 조언을 구할 수는 있었다) 말로만 듣던 개발자와의 갈등, 디자이너와의 갈등, 비동기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는 잠수함과 일하기, 일정 펑크 후 공유도 해주지 않는 사람 … 이 모든 프로젝트 갈등을 겪는 당사자가 되어보는 귀한 경험을 했다.
레거시 정책에 대해서 이슈 팝업을 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이것도 새로운 레거시가 되지 않을까 덜덜 떨기도 했다. 타 팀에서 발제한 프로젝트가 갈등이 심해지면서 불 끄는 소방수로 한참 뒤에 투입되어 이미 다 개발된 피쳐의 정책을 정리하고 문서화하기도 했다. 내가 잘못 기획한 것을 프로젝트 개발 중간에 깨닫고 어떡하지 발을 동동 구르다가 잘못을 시인하고 싹 바꾼적도 있다. (다행히 그게 어렵지 않은 상황이었다ㅜㅜ 여전히 무한 감사) 모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갑자기 구현 불가능해지면서 프로젝트 중간에 많은 것을 바꾸어야 했던 적도 있다. 내 욕심을 위해서 설득해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현실적으로 타협하기도 했다.
신입으로 이 모든 것을 겪는 게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힘든 사유는 따로 있지만 징징글은 이만 줄임...) 사실 퇴사면담을 준비하면서 ‘우리 회사의 어쩔 수 없는 이러한 한계점이 아쉬웠기 때문에 이러한 점을 개선할 수 있는 회사에 가서 더 성장하려고 합니다^^’라는 멋진 말을 생각해갔었다. 근데 본부장님이랑 면담을 시작하는데 한 마디 꺼내는데 눈물이 주룩주룩 났다. (사실 지금도 퇴사 면담을 생각하니 눈물이 주룩주룩 나서 카페에서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음) 본부장님은 매우 스윗하게도 주머니에서 티슈 한 장 꺼내주시면서 한 장 밖에 없으니 그만큼만 울라고 하셨다. 쏘스윗… 하여튼 한시간 반 동안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징징댔던 것 같다.
퇴사 사유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결정적으로 퇴사를 결심할 즈음에는 내가 제품에 대한 애정을 잃었었다.
더 이상 제품이 더 나아질 방법을 고민하고 싶지 않고, 사용자도 데이터도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일이 중요한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변하는 게 무서웠다. 그리고 회사에게도 제품에 애정이 없는 제품 매니저는 독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가 생각하는 몇가지를 채워줄 수 있는 제품과 조직을 찾아 이직을 하게 되었다.
이 회사에 감사하는 점은 :
- PM 커리어를 시작하게 해준 고마운 회사이다. 3년차 공고에 지원했었는데 운 좋게 신입으로 들어가서 주니어 PM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사수는 없었지만, 기존 문서나 프로젝트를 통해 어떻게 일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 제품을 만드는 일은 재미있다. 심지어 그 프로젝트가 하기 싫던 것이었어도 중간 중간 재밌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다. 인턴은 매우 단기였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나름(?) 길게 일해보면서도 이 일 때려치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든다는 점에서 직업 적성에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 내가 맡게 된 영역이 재미있었다. 사실 큰 회사라면 한 세 명이 맡아야 하는 영역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중요한 영역을 나 혼자 맡았다. 사실 더 있으면 올해와 내년에 할 수 있는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정말 많았을텐데 이걸 놓쳤다는 점은 참 아쉽다.
-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일도 있었지만, 내가 무언가를 시도하려고 하면 그래도 할 수 있는 조직이었다. 수평적인 조직이었기 때문에 내가 무언가를 말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신입을 연차로 찍어누르지 않는 조직이라 좋았다. (애초에 다른 사람 연차를 잘 몰라서 내가 신입인 지 몰랐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참 많았다. 이직 결정을 하고 나서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다. 남 몰래 멋진 야망이 있는 사람도 있었고, 평소에도 열정적으로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회사사람들이랑 노는 거… 재밌다… 또 노라요 <3)
이 회사에서 배운 것 :
- 사람과 함께 일하는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해본 것 같다. 모든 사람이 나같지 않고, 함께 일하는 개발자들도 각자 성향이 매우 다르다. PM은 자신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그에 맞게 동기부여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한 것 같다. 수동적으로 보이지만, 아이디어를 물어보면 말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처음부터 아이디어를 왕창 쏟아내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매우 세세한 부분까지 기획 쪽에서 정해주길 바라는 사람도 있고, 어느 정도 이상은 선을 넘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걸 어떻게 정리하는 게 현명한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 나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고민을 많이 해보았다는 점. 개발자의 요청으로 특정 부분에 대해서 내가 다 정리한 적이 있는데 (그 개발자의 근거는 퇴사한 PM이 기존에 이 업무를 맡아왔다는 것이었다), 동료 PM은 이걸 왜 맡았냐고 이걸 내가 해주었기 때문에 이 업무가 PM 쪽으로 넘어오게 되었다고 한 것이다. 다른 회사에서는 PM이 이 업무를 안 한다며… 이건 결국 조직마다 다르게 되는데 선을 잘 찾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이 일 말고도 비슷한 상황을 종종 겪게 되었다. 내가 어디까지 기획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관여해도 되는지 신입 때는 이게 제일 어려운 것 같다. 이걸 내가 해야 하는지 / 이걸 내가 해도 되는지 구분하기에 시간을 잔뜩 썼었다.
- 내가 어떤 상황에서 동기부여 되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했다. 결국 이 부분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품에 애정을 잃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동기부여하는 환경에 대한 기준을 세우고 이걸 바탕으로 이직처를 결정했다.
하지만 새로운 회사 역시 나를 100%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나의 모든 기준을 충족시켰더라도 새로운 불만이 나타나 나를 괴롭힐 것이다. 어느 조직에나 안 맞는 사람, 하기 싫은 일은 존재할 수밖에 없으니까. 다만 종합적으로 조금 더 나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사람은 더 나은 곳으로 움직이는 존재니까!
그리고 기억하고 싶은 감사했던 혹은 재미있는 동료평가 몇 가지를 남긴다. 사람들이 참 좋은 회사였다고 기억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그리고 퇴사파티도 감사합니다? 내가 요청했지만 진짜로 해주셨다 ><ㅋㅋㅋ 롤링페이퍼 써달라고 했는데 그건 안 해주심 흑흑 영광스럽게도 나는 아카이브된 슬랙 채널 속에 영원히 이름을 남겼다)
ㅇㅇ님의 기획은 항상 서비스 대상자의 니즈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하고 데이터를 활용한 접근 방식을 취합니다.
매우 정석적이고 누구나 그래야한다고 얘기하지만 실제로 업무를 하면서 이를 지키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한 확신은 고객에 대한 관찰을 소홀하게 만들기 쉬운데요.
ㅇㅇ님은 이를 잘 지키고 있다 생각합니다.
작년에 제가 너무 고생시켜드렸는데 힘든 내색 없이 항상 밝은 모습으로 대응해 주시고 프로젝트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기획을 잘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다방면으로 많이 고민하시는 것 같습니다. 의견도 잘 수용해 주시고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이 강점인 것 같습니다.
간혹 문의 드리면 뛰어 올라오시는데
걸어서 천천히 와주세요.
제가 너무 죄송스럽습니다.
자랑만 적었지만 ㅋㅋㅋ 따끔한 피드백도 있었다. 이런 보완점도 챙겨서 새 회사에서는 더 나은 모습으로 성장해보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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